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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네 살, 피란길에 동생을 업다

1950년 6월 28일, 서울에서 대전까지 보름을 걸은 소년의 기억

기록자 이하은 · 손녀
대상 이병철 · 공무원 35년 · 91

1950년 6월 28일

그날 새벽, 아버지가 잠든 아이들을 깨웠다. "당장 나가야 한다." 어머니는 밥을 짓고 있었지만, 밥이 다 되기도 전에 출발했다.

열네 살이었다. 등에는 여섯 살 된 여동생을 업었고, 어머니는 두 살 된 막내를 안았다. 아버지는 보따리 두 개를 양손에 들었다. 그 안에 뭐가 들었는지는 아직도 모른다. 물어볼 틈이 없었다.

끊어진 다리

한강 다리가 끊겼다는 소식이 돌았다. 나룻배를 타야 했는데, 사람이 너무 많았다. 강변에 수백 명이 몰려 있었다. 동생이 등에서 울기 시작했다. "오빠 내려줘, 무서워." 내려줄 수 없었다. 내려주면 사람들 틈에서 잃어버릴 게 뻔했다.

나룻배는 사람을 실을 수 있는 양보다 훨� 많은 사람을 태웠다. 물이 뱃전까지 찰랑거렸다.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숨소리만 들렸다.

보름을 걸어서

서울에서 대전까지 걸었다. 보름이 걸렸다. 고무신이 사흘 만에 닳아서 맨발로 걸었다. 발바닥에 피가 났고, 흙이 달라붙어 굳으면 또 걸었다.

길에 사람이 쓰러져 있었다. 도와줄 수 없었다. 멈추면 우리도 쓰러질 것 같았다. 그냥 지나갔다. 아버지가 앞만 보고 걸으셨다. 뒤를 돌아보시지 않았다.

밤에는 들판에서 잤다. 동생을 품에 안으면 심장 소리가 느껴졌다. 그게 유일하게 안심이 되는 순간이었다.

대전의 학교

대전에 도착한 뒤, 피란민 수용소에서 두 달을 지냈다. 아버지가 일자리를 구하셨다. 가을이 되자 학교에 다시 다닐 수 있었다. 교실 바닥에 앉아 수업을 들었다. 책상이 부족해서였다.

전쟁이 끝나도 서울로 돌아가지 않았다. 돌아갈 집이 없었다. 대전에서 중학교를 마치고, 고등학교를 마치고, 군에 입대했다. 제대 후 면사무소에 취직했다. 35년을 공무원으로 일했다.

70년의 침묵

이 이야기를 70년 동안 아무에게도 하지 않았다. 물어보는 사람이 없었다. 명절에 가족들이 모여도, 손주들이 찾아와도. 아무도 묻지 않았고, 꺼내지도 않았다. 등에 업혀 울던 여동생은 지금 일흔여섯이다. 서로 그날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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