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 난로 위의 도시락
1975년, 전교생 28명 시골 분교에 첫 발령받은 스물세 살 선생님
전교생 28명
1975년 3월, 충남 서천의 시골 분교에 첫 발령이 났다. 스물세 살이었다. 시내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한 시간을 더 걸어야 닿는 곳이었다.
교실이 두 칸뿐이라 1학년부터 3학년까지 한 교실에서 가르쳤다. 칠판을 세 칸으로 나눠 왼쪽에는 1학년 받아쓰기, 가운데에는 2학년 산수, 오른쪽에는 3학년 국어를 썼다.
난로 위의 도시락
겨울이 문제였다. 교실에 난로가 하나 있었는데, 아이들이 가져온 도시락이 꽁꽁 얼어 있었다. 난로 위에 도시락을 올려놓으면 점심때쯤 따뜻해졌다. 반찬이라고는 김치와 멸치볶음이 전부인 도시락도 있었고, 아예 도시락을 못 가져오는 아이도 있었다.
집이 10리 넘게 먼 아이가 한 명 있었다. 겨울에 등하교가 위험해서 자취방에 재웠다. 그 아이의 아버지가 가을에 쌀 한 가마를 지고 찾아왔다. "선생님, 이것밖에 없습니다." 그 쌀로 겨울을 났다.
절을 하던 학부모
그 시절 학부모는 선생님을 만나면 절을 했다. 내 아이를 가르쳐주니까. 연말이면 학부모들이 직접 농사지은 고구마와 배추를 가져왔다. 선물이라고 할 것도 없는 것들이었지만, 그 마음이 무거웠다.
의대에 간 아이
4학년 때 전학 온 아이가 있었다. 아버지를 여의고 혼자 동생 둘을 돌보는 아이였다. 점심시간에 교실에 남아 동생들 숙제를 봐주곤 했다. 방과 후에 따로 불러 수학을 가르쳤다.
그 아이가 나중에 의대에 갔다. 졸업식 날 찾아와서 "선생님 덕분입니다" 했다. 이미 서른이 넘은 청년이었다. 의사 가운 주머니에서 편지를 꺼냈는데, 초등학교 4학년 때 받은 상장이 접혀 들어 있었다.
32년
32년을 교단에 섰다. 마지막 학교는 대전의 큰 초등학교였다. 전교생이 1,200명이었다. 서천 분교의 28명이 떠올랐다. 퇴임식 날 교실을 마지막으로 둘러보았다. 난로는 이미 오래전에 사라졌고, 교실에는 에어컨이 달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