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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에서 김치를 담그다

1979년, 사우디아라비아 정유소 건설 현장의 청춘들

기록자 김서연 ·
대상 김영호 · 건설업 38년 · 78

포항에서 시작된 건설맨의 인생

1974년, 포항. 현대건설 공채 면접장에서 면접관이 물었다. "체력은 자신 있나?" 군대에서 특전사를 마친 스물네 살 청년은 자신 있게 대답했다. 바로 합격이었다.

처음 맡은 현장은 울산 석유화학단지. 콘크리트 타설 작업반에 배치됐다. 새벽 5시에 현장에 나가 밤 9시에 숙소로 돌아오는 생활이 1년 넘게 이어졌다. 월급은 12만 원. 그중 10만 원을 고향 어머니께 부쳤다.

사막에서의 3년

1979년, 사우디아라비아 정유소 건설 현장에 파견 발령이 떨어졌다. 비행기를 처음 타봤다. 창밖으로 내려다본 사막은 끝이 없었다.

낮 기온이 50도를 넘었다. 작업은 밤에만 했다. 낮에는 컨테이너 숙소에서 잠을 청했지만, 에어컨이라는 게 없던 시절이라 잠이 오지 않았다. 모래바람이 불면 숙소 안에도 모래가 쌓였다.

제일 힘든 건 더위가 아니었다. 한국 음식이 그리운 것이었다. 현지 식당의 양고기와 납작빵은 석 달이 지나자 넘어가지 않았다.

사막 한가운데의 김치

동료 여덟 명이 모였다. 현지에서 구한 배추는 한국 것보다 작고 억셌지만, 한국에서 소포로 받은 고춧가루와 젓갈로 버무렸다. 플라스틱 통에 넣고 사막의 열기에 하루만 두면 알아서 익었다.

그 김치는 세상에서 제일 맛있었다. 밥도 없이 김치만 먹으면서 동료들과 웃었다. 사막 한가운데서 쪼그려 앉아 김치를 먹는 한국 남자들. 머리 위로 중동의 별이 쏟아졌다.

3년 뒤 귀국하던 날, 비행기 창밖으로 한국 땅이 보이자 옆자리 동료가 울었다. 그도 울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돌아와서

귀국 후 포항제철 공사 현장에 투입됐다. 중동에서 단련된 체력과 경험은 귀국 후에도 계속 쓸모가 있었다. 현장 소장까지 오르는 데 15년이 걸렸다. 38년을 현장에서 보내고 은퇴한 날, 안전모를 마지막으로 벗으며 생각했다. 사막의 별과 김치 냄새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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